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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기록

일을 AI가 맡을 수 있는 크기로 바꾸는 일

2026년 5월 7일2분 읽기

AI를 혼자 잘 쓰는 것과,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오랜만에 친한 지인분을 만났습니다. 개인 커머스 관련 업무를 하시는 분이었고, 만나기 전부터 부탁드린 것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업무를 보시면서 개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찾아 달라 라는 숙제 아닌 숙제를 미리 드렸었습니다. 저희는 밥을 먹고 카페로 옮겨, 오랜만에 mobbing/ pair-programming을 하는 것처럼 실제 작업 흐름을 같이 열어봤습니다.

막힌 지점은 프롬프트가 아니었습니다. 일이 아직 AI에게 맡길 수 있는 크기로 나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인터뷰를 하고, 하시는 업무에 대해서 시연을 부탁드리고, 이후 제가 한 일은 단순했습니다. 전체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첫 실행 경로 하나만 만들었습니다. 데이터를 한 번 가져올 수 있는지, 그 값을 시트에 쓸 수 있는지, 이 두 흐름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 전체 자동화가 아니라,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첫 번째 경로를 만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평소에 당연하게 쓰던 기준들을 말로 꺼내야 했습니다.

공유한 패턴들

llm 모델이 막힌다고 할 때 멈추지 않기

llm 모델이 "안 된다"고 할 때 그대로 수용하면 거기서 끝납니다. 동작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다른 접근 경로를 찾고, 툴을 바꾸거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뚫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5분 제약과 인터럽트

모델이 오래 헤매고 있을 때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시간 제약을 미리 걸고, 그 안에 진전이 없으면 인터럽트합니다. "지금 확인된 사실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보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플랜과 액션 플랜은 레이어가 다르다

방향(플랜)이 있어도, 수행 지침(액션 플랜)이 없으면 AI도 같이 헤맵니다. phase별로 구체적인 todo를 만들고, 각 단계마다 도달해야 하는 검증 지점을 미리 정의해두어야 합니다.

에이전트 병렬 실행

독립적인 작업은 나눠서 병렬로 진행합니다.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지점만 다시 보고, 나머지는 동시에 돌립니다. notification을 활용하면 종료 여부를 알 수 있기에 흐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커밋 단위로 남기기

각 액션 플랜의 결과를 커밋 단위로 남깁니다. 세션이 달라져도 돌아갈 수 있고,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세션 하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됩니다.

머릿속 컨텍스트 스위칭 설계, 수행 모드 분리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는 일과, 그것을 쪼개서 실행하는 일은 같은 레이어가 아닙니다. 이 두 가지가 머릿속에서 분리되어 있어야, AI에게 맡길 단위도 명확해집니다.

깨달은 것

혼자 쓸 때는 이 기준들을 생략해도 됩니다. 제 머릿속에 이미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달할 때는 꺼내야 합니다. 프롬프트를 대신 써주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업무를 보고 어디가 실제 병목인지 파악하고, AI가 수행할 수 있는 크기로 일을 다시 나누는 일입니다.

이게 이번에 가장 크게 남은 것입니다.


헤어질 때 지인이 말씀하셨습니다. 업무 관련 툴 구독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덕분에 비용 절감이 많이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산하지 말고 식사와 커피는 본인이 사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용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다양한 것을 스스로 실험하고 만들어왔지만, 이번엔 그것이 실제로 누군가의 업무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혼자 쌓아온 패턴들이 다른 사람의 업무를 다르게 보게 만드는 데에도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무척이나 설레고 좋은 기분이었습니다.

AI를 잘 쓰는 일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일을 나누고, 맡길 지점과 확인할 지점을 정하고, 작은 실행 경로를 만드는 일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감각을 혼자 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싶습니다.